[책] 고립의 시대책
노리나 허츠 저/홍정인 역 , 고립의 시대, 웅진지식하우스, 2021년 11월 19일, 구글전자책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는 무엇인가? 공동체 인프라가 약하고 사외적 유대가 무너지고 시민들이 경제적인 불안을 느끼는 지역에서 특히 트럼프를 지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인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일베, 오프라인에서는 특정 종교집단을 이끄는 지도자와 그 종교가 아닌 지도자를 믿고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 실제로 이 종교 지도자는 보수진영의 정치인들과 모종의 밀약을 맺기도 했다.
작가는 책의 전반에 걸쳐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의 외로움이 극에 달하면서 올바른 민주주의가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게 크게 공감하지만 한국사회만 보더라도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 공동체는 무너졌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이런 내용이 표현되면서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공감을 얻기도 했다. 저녁시간이 되면 함께 놀던 친구들이 엄마들의 밥 먹으라는 외침에 각자의 집으로 들어간다.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골목길에서 흘러나오는 음식냄새로 오늘의 식단을 알수도 있다. 식사준비를 하지 않더라도 엄마들끼리 함께 장을 보러 갔거나 재료를 같이 손질하는 과정에서 다른 집의 찬거리도 알 수 있다. 이런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이 개신교이다. 물론 개신교 뿐만 아니라 종교가 많은 부분을 대체했지만 개신교는 특히 두드러지게 공동체를 강화했고 이를 기반으로 기득권을 형성했다. 그 이면에는 당연히 돈과 권력이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개신교 혹은 종교인을 탓하는 것은 아니고 특정 세력이 문제시 된다.
염증은 필요하지만 만성이 되면 문제다. 외로움도 만성이 되어 뉴노멀이 되면 스트레스를 증폭시키게 된다. 포퓰리스트 정치가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이용해서 분열을 조장한다. 그러면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 불순한 세력이 더해지면서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먹방을 소비하는 경험이 잦고 혼자인 시간이 많아질수록 공동체를 구축하고 포용적 민주주의를 떠받칠 기술을 연습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물론 긍정적인 대체제로 작가가 본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한국의 콜라텍이다. 저렴하게 운동을 곁들이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것이다. 또다른 사례로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즉 공동숙소, 공동사무실 등이다. 물론 이런 공유/공동의 시설들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공간만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 공동장소에서 일어나는 일도 분담해야 된다고 한다. 위워크를 공유사무실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사용료가 비싸서 화이트칼라노동자만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본인의 업무 외 청소와 같은 공동체 활동은 청소노동자들이 대체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도 아니며 실제 기능도 그렇다.
저자의 모든 주장을 동의하지는 않지만 외로움과 고립감을 악용하는 포퓰리스트의 추잡한 행태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또 초개인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포용적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는데 있어서는 공감한다. 그렇지만 포용적민주주의가 반드시 건전한 공동체활동에서 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가 올바른 공동체활동에서 배우기 쉬운 것은 맞겠지만 공동체의 범주와 크기, 결속의 정도에 따라서 나이에 따라 순차적으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자본주의가 돌봄과 조화를 이루려면 사회정의가 실현된 경제가 필요하고 성공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도 제시되어야 한다.